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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검찰총장 프로필 고향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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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프로필

 

 

김수남은 1959년 12월 29일 대구 출생으로 그의 아버지 김기택은 영남대학교의 총장을 지냈고 김 총장의 부친은 1988년 박근혜가 이사장일 당시 학교 비리와 관련해 재단과 갈등을 빚다 사퇴한 인물이다.김기택은 2007년에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으며 아들 김수남은 직접 검찰총장이 되고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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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청구고등학교흘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해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87년에 사법연수원을 16기로 수료했다. 김현웅 전 법무부장관과는 사법연수원 동기다.

처음엔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했지만 3년 뒤에 검찰로 옮겼다. 법무부 검찰3과 검사, 광주지방검찰청,공안부장검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3과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4부장, 법무부,정책홍보관리관, 인천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등을거쳐,2008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검사로 임명되었다.

인천지검 2차장 시절에는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서 특별수사본부 수사진에 합류해서 공보관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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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이던 2009년 1월에는 미네르바 사건을 맡아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애초에 처벌규정을 찾기가 어려운 사건이었으나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인터넷을 통한 허위사실유포금지) 위반 혐의로 엮어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기소하는 등의 쾌거를 이루었다. 이때부터 MB정부에서 가장 신임 받는 정치검사로 꼽히기 시작했다.

그 후 2009년에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이라는 요직으로 직행하면서 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연이어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영전하였다. 그 후에도 범죄예방정책국장,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요직을 두루 맡았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있었다. 이 때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 수사를 총지휘했는데, 테러준비의 정황증거를 잡아내는 등 치밀한 수사를 해서 이석기를 구속기소하는 데 성공했다. RO사건에 대한 기초수사가 워낙 훌륭했기 때문에 이석기는 결국 내란선동죄로 확정판결을 받았고 국회의원직도 박탈되었다. 이로써 MB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의 눈에도 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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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힘입어 2013년 12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영전하였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에는 우병우 민정비서관과 협력하여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를 깔끔하게 매듭지었다. 이때 우병우가 김기춘 비서실장의 눈에 들어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던 것처럼, 김수남 역시 김기춘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출신지 역시 대구여서 이때부터 이변이 없는 한 차기 검찰총장 1순위로 유력시되었다.

결국 예상대로 2015년 2월 대검찰청 차장을 거쳐,2015년 12월에 제41대 검찰총장으로 승진했다.그러다가 2016년 검찰이 우병우 전 수석의 직권남용 혐의 등에 관한 수사를 할 때에는 우병우의 절친인 윤갑근을 특수팀장으로 임명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외에 2016년 8월 16일 MBC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우병우 수석 감찰 기밀 누설 의혹을 보도했을 때, 밤늦게 우병우와 17분가량 통화했다는 사실이 박영수 특검에 의해 2017년 3월 확인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2016년 7월부터 10월까지 우병우 수석과 20여 차례 통화했으며, 그중 김수남 총장이 우병우 전 수석에게 전화를 건 횟수도 6차례나 된다는 사실이 파악되었다.실제로 2016년 8월~12월 우병우에 대한 수사를 지휘할 때에는 '보여주기식 수사'를 했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는 처음의 미온적인 자세와는 달리 점점 기대 이상의 적극적 수사지휘를 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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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2017년 5월 9일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2017년 5월 11일 조국 민정수석이 임명되자 사의를 표명하였다.그리고 다음 날인 5월 12일 사표가 수리되었다. 이로써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 이후 임기를 채우지 못한 13번째 총장이 되었다.

5월 15일 이임식을 열고 27년 검사 생활을 마감하였다. 사임하면서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잔인하다"는 말을 남겼다.

여담으로, 2015년 말 취임식과 2017년 5월 15일의 이임식에서 똑같은 주황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개인적으로 임기를 끝까지 못 채운 것에 대해 아쉬움이 꽤 남았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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