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근家 떵떵, 우린 고통"..31년만에 다시 법정 선 형제복지원대법, 비상상고 재판..檢 "박씨 무죄, 형법 제20조 잘못 해석" 피해자 "사회적 참회를"..원판결 파기땐 국가에 손배소 가능
밀려 형제복지원 사건이 잊히는 것에 대한 서러움을 적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형제복지원 원장 고(故) 박인근씨는 긴 재판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박씨는 2016년 사망했지만 생존한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31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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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형제복지원 박인근 감금 무죄' 비상상고 기각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형제복지원 사건' 주범 고 박인근 전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 관련 무죄 판단을 다시 해달라며 낸 비상상고를 대법원이 기각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1일 문 전 총장이 제기한 박 전 원장의 '야간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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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대법원,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 '특수감금...부산일보2021.3.11.관련뉴스 4건 전체보기
[살아남은 형제들] 12번째 증언 "호적 등본 떼보니, 아버지가 '박인근'으로…"
벗어난 지 10년. 자동차를 사기 위해 호적 등본을 뗀 강철민(51·가명) 씨는 말문이 막혔다. 아버지 이름 칸에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이름 석 자가, 자신은 그의 아들로 등록돼 있었다. 강 씨의 친부, 어머니가 재혼한 새 아버지, 그리고 서류상 아버지인 박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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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형제들] 33번째 증언 "400~500억 추정 박인근 일가 재산 환수해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뚜벅뚜벅센터'(부산시 형제복지원 피해자 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모여 서로를 다독이고 있다. 박 의원은 박인근 일가의 재산을 끈질기게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이 수용자들의 노동력 착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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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 보내주겠다"던 경찰, 14살 소년 지옥같은 형제원에 넘겨[형제복지원 피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11>1979~1981, 형제원에 강제수용된 배기열씨 진술서"좋은 데 보내주겠다"던 경찰이 형제원 보내2년간 온갖 기합과 구타에 시달려평생 트라우마로 남은 지옥같은 시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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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 사회고발 장편소설 형제복지원과 비밀결사
이루고 있었다. 수레가 많이 밀린 상태였다. 다른 빈터에 쌓아도 될 텐데 굳이 한 곳에 모아 백두산을 만들려고 하는 건 원장 박인근의 지시 때문이었다. 원생들을 애먹이려는 속셈보다는 무엇이든 거대한 성공을 바라는 그의 인생철학 때문인지 몰랐다. 아무튼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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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형제들] 11번째 증언 "식물인간처럼 돼버린 박인근 원장, 제가 업고 나왔어요"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사상온천'에서 면접을 위해 마주한 사장. 그는 다름 아닌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이었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생계 생각하며 꾹꾹 눌렀다. "형제복지원에 있었다"고 하자 박 원장은 보증금 3000만 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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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형제들] 16번째 증언 "박인근 '호주골프장' 2만여 평, 사위한테 몰래 넘겨" 형제복지원 피해자(골프장 인부) 임봉근 씨
아픔을 치유하는 다음 걸음으로 이어지길...('살아남은 형제들' 시리즈는 매주 토요일 연재됩니다.) <간추린 이야기> 1987년 박인근 원장이 감옥에 들어가자 형제복지원은 '해방'을 맞았다. 시설 열쇠꾸러미를 관리하던 임봉근(73) 씨는 혼자만 나올 수 없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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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형제들] 30번째 증언 "박인근의 형제원, 당시 공무원들 협조 없인 불가능한 일"
채용해 자료 조사만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남아 있는 자료라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인근 원장의 '형제원 왕국'이 공무원 협조 없인 불가능했다고 단언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 부산시와 부랑인 위탁 계약을 맺었다...
부산일보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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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끈질기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자료로 복원한 30년 전 참상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 단속이라는 명분으로 공권력과 박인근 원장 일가가 무고한 시민을 강제로 수용해, 폭행·살인·강제노역 등 인권유린을 저지른 사건이다. 보도는 아무런 이유 없이...
단비뉴스202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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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원장실에 고문 도구… 박인근도 살인 가담”
중 사망한 사람을 직접 봤거나 들었으며, 지금도 내전 경험 수준의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실에서 고문 도구를 봤다는 증언도 나왔다. 부산시 실태조사 용역 최종보고 피해자 149명 대상 첫 공식조사 79.7%...
부산일보20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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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지 2년 만에 피투성이로 돌아온 아이, 부모는 통곡했다[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10>1984~1986, 형제원 강제수용된 박창범씨 진술서이모댁 가는 길 부산역서 납치구타에 피투성이로 실려간 병원서 탈출한쪽 눈 영구 실명, 정신병원 수시 입원
괴로워 하고 있다. 2021.5.20 박지환기자 popocar@seoul.co